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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나의 그림 인생은 남사당패와 외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광대의 삶과 선을 생명줄로 삼고 사는 환쟁이의 삶이 판박이 처럼 닮지 않았던가?
중학교 재학시절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을 때, 난 우리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직업화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환쟁이일 뿐이었다. 오백년 조선 역사속에 뿌리 깊게 박힌 "쟁이"이 대한 천시사상에 편승한 당신들의 노심초사였을 것이다.


내가 처음 고료를 받고 일을 한 것은 일제가 패망하기 두 해 전쯤인 1943년이었다.
오늘날 대한통운의 전신인 조선운송주식회사에서 그림 청탁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리게 된 것이 오늘날의 그림책과 비슷한 그림극의 삽화였다.  그렇게 시작한 삽화가의 길이 벌써 해를 곱절로 곱해도 셈이 흐릿할 정도로 시간의 흐름을 타고 있다. 그 동안 6.25동란 중 대구에서 교과서 만드는 작업도 해 보았고 10여년간 신문사 생활도 해 보았다. 또 정당치 못한 예우와 대가에 붓을 놓고 주변인이 되어 관망만 일삼기도 수 차례 거듭햇다. 그럴 때마다 붓을 꺽어 버리고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으련만 그렇지 못했던 것은, 나를 끌어 당기는 묘한 그림의 매력에 취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천직이라는 운명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라면 쉽사리 공감이 갈 것이다.



사람들은 내 그림 스타일이 독특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그리는 친구들은 내 그림을 좋아하는데 신문사나 출판사에서는 잘 알아 주지 않는다. 스타일도 그렇지만 실은 고료를 현실에 맞게 책정해 달라는 나의 요구가 버거워 꺼린다는 것을 알았다.
조선시대에는 환쟁이들이 부잣집 사랑방을 전전하며 주반이나 얻어 먹기위해 그림을 그렸다. 이런 환쟁이 멸시풍조는 조선왕조가 망하고 일제시대에 들어서자 주춤거리며 지하로 잠복하더니 해방을 맞아 다시 살아나 근 반세기 동안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큰 줄기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이상향을 쫓아 일각을 아끼고 노력하는 요즘에도 이러한 과거의  잔재에 의한 사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아닐까?  일러스트레이션 분야가 우리 미술의 한 장르로 분리되어 자리 잡아가기 시작하는 요즘이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적기로 본다. 그러나 유행에 영합하여 속된 말로 돈냄새 나는 그림으로 자신들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근본적인 문제해결 없이 겉만 반듯한 모양새를 쫓으며 안일한 생활을 계속한다면 변화의 기쁨은 맛 볼 수 없을 것이다. 변화의 조짐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내부에서 불러 일으켜야 한다.

광대가 외줄을 출렁거리게 하여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하 듯, 우리도 선을 움직여 감동이 살아 숨쉬는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선이 다름 아닌 목숨줄이자  예술과 생활의 경계선 이므로...